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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5 :: 우리신문기사 -한주연
  2. 2008.11.05 :: 재독한국여성모임 30 생일잔치에 다녀와서(류현옥)
  3. 2008.11.03 :: 재독여성모임 창립 30 주년 축전 참관기(이은희)
  4. 2008.11.03 :: 30 Jahre der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Cho-Ruwwe, Kook-Nam)
  5. 2008.10.31 :: Liebe Frauen, Freunde und Gäste(Ralph Prudent)
  6. 2008.10.30 :: 재독한국여성모임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유정숙)
  7. 2008.10.10 :: 재독한국여성모임 30주년 생일잔치에 다녀와서 -류현옥
  8. 2008.10.10 :: 재독한국여성모임 30년역사(조국남 정리)
  9. 2008.09.15 :: 30 Jahre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
  10. 2008.09.12 :: Programm
  11. 2008.09.12 :: Einladung
  12. 2008.09.12 :: 재독한국여성모임 창립 30주년 기념행사 10.-12.10.2008
  13. 2008.09.12 :: Einladung zum 30. Jubiläumsfeier der Koreanischen Frauengruppe in Deutschland
  14. 2008.09.10 :: 30. Jubiläumsfeier der Koreanischen Frauengruppe in Deutschland
  15. 2008.07.12 :: Aufruf zur Mahnwache am 13.08.2008
  16. 2008.07.12 :: Info über Mahnwache am 13.08.2008
  17. 2008.06.09 :: LA 민족학교 28주년 오월민중제 참석 31.05.2008
  18. 2008.05.31 :: 재독한국여성모임 30주년 행사(우리신문)
  19. 2008.05.31 :: 한국민주화 도우미’ 재독한국여성모임 30돌(한겨례) -한주연
  20. 2008.05.31 :: 재독여성모임 창립 30 주년 축전 참관기-이은희
  21. 2008.05.24 :: 30. Jubiläumsfeier-Bekanntmachen
  22. 2008.04.30 :: 제유럽오월민중제- 30.06.-01.06.2008
  23. 2007.10.19 :: 가을 총회와 세미나 16. - 18.11.2007
  24. 2007.10.17 :: Einladung zum Herbstseminar am 16.-18.11.2007
  25. 2007.10.11 :: [Fotos] Schamanen im Koreanischen Garten in Frankfurt 22.09.2007
  26. 2007.10.05 :: [Fotos] Lesung "ZUHAUSE" in Maintal, Main-Kinzig-Kreis 28.09.2007
  27. 2007.09.30 :: 여성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아시아여성영화제>, 안숙영 박사, 2007
  28. 2007.09.28 :: Asian Women's Film Festival 19-23.09.2007
  29. 2007.09.01 :: 베를린 아세아 여성영화제 프로그램 19-23.09.2007
  30. 2007.09.01 :: 베를린 아세아 여성영화제 프로젝트 기획안 19-23.09.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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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한국여성모임 30주년 생일잔치에 다녀와서.pdf



재독한한국여성모임 30 생일잔치에 다녀와서                류 현옥


Berlin Bahnhof Zoo 앞에서 생일잔치 장소로 운행할 버스에 오를 그 순간 까지 내 마음은

뒤숭숭하여 생일잔치 에 가는 기분같지가 않았다

나는 1984 년 귀향길에 오를 때까지 이 여성모임에 들어 있었고 1987 다시 이곳에 살기 시작한후로

멀리서 뜸뜸이 소식을 들어온 X 회원이기에 이렇게 초대받아 주체측에서 대절한 버스에 뻔뻔스럽게

올라서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렷기 때문이다.

하나둘 아는 사람이 버스에 오르면서 나의 이마음을 감지하지 못한체 반갑게 인사 를 했다.심지어

몇몇 회원과는 뜨겁게 끌어안기 까지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나와 같이 초대된 생일손님으로 버스에 타게된사람이 있다는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버스가 잔치장인 Bielefeld 에 도착하기도 전에 한식구가 된 느낌이었다.

나의 이 마음을 틀어놓고 이야기 하자 잔치준비를 한 회원중의 한사람이 ‚ ’’무슨 소립니까 !? 우리는

이렇게 소문내어놓고 오는손님 없이 우리끼리 앉아 있게 될까봐 얼마나 걱정했는데……시간내에

주셔서 감사합니다 „ 했다

무슨잔치든 손님없이는 성립될수가 없단다.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니 마음이 푹 놓였다

이말 한마디가 재독한국 여성모임의 특성을 한꺼번에 다표현하고 있다 . 둘러서 얼렁뚱단하게

상대방이 듣기 좋으라고 만 하는 말이 아니라 동시에 마음속의 근심을 숨김없이 다 토해버리는 것이다.

이 여성단체는 탄생부터가 그랬다. 커피잔들고 침목하자는 단체가 아니라 자기 의식화 와 정체성 을

찿자는 데서 시작했다. 초기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독일정부에 순종하지 않겠다는

투쟁정신을 기본으로 이루어진 단체이다.

조국의 민주화 운동에가담하고 ,착취당하는 여성노동자 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고 아직다

성숙하지도않은 젊은 나이에 일본정부에 끌려가 그들의 잔인한 군인들의 위안부가된 우리의

할머니들의 한을 같이 노래하고 용서받을수 없는 그들의 무도함을 폭로한는 운동에 가담한 단체이다.

그래서 이단체는 피로한 단체이다. 여기서 피로하다는것은 지쳤다는 육체적 피로가 아니라 끈임없는

긴장과 진진한 노력을 요구하는 즉 단체의 목적을 위해서는 융화를 중요시하지않는다는이야기다 .

그날 회원들이 많은 시간을 소요한 준비로 완벽하게 3 일을 끝낸 이생일잔치 장에서 자주 들을수

있었던 „구회원“ „현직회원“ 새로들어온 „신회원“ 등의 표현들이 이 단체의 역사를 이야기해준다.

마치 맨발로 돌길을 걸어온것 처럼 이들은 어려운 상황에 유독 어려운 일만 찿아서 강행한

여성용사들이다. 이 강인한 단체 정신이 이들을 이끌고 30 년살이되는오늘날에 이른것이다.

이점에서 가장중요하고 단체의 근본이 된것은 여성해방 정신이라고 봐야할것이다.

동원된 남편들의 등에 아이들을 업혀서 문밖으로 내보내고 여성들만 앉은자리에서 여성들 끼리만

통하는 말로 여성단체의 구조를 이루었다. 조국을 떠나와 사는 한인 여성들의 아픈마음들을 담아

전달하는 우리여성 전유( Alleinbesitz )의 말을 토대로 한 단체이다

그래서 누구든 이곳에 살고있는 한국여성이면 들어오는 그날로 마치 친정집 안방에 들어 앉은 것처럼

말이 통한다고 한다

이제 30 의 성인이 되었으니 단체의 방향이 앞으로 어느 길로 가야 할것인지 여유있게 남은힘을 아

껴서 오래 지속할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Vivat !!!!! KFGD !!!! Viva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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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여성모임 창립 30 주년 축전 참관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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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Deutsch 2008. 11. 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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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한국여성모임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저는 오늘 이 시기에 대해 여성모임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뒤 배경으로 

하여 저의 개인적인 기억들을 중심으로 말을 엮어 보겠습니다. 

저는 1985년에 독일 보쿰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빨리 많

은 거주한국인들을 사귀게 되었고 오자 마자 이미 여기서는 연극 금강공연, 여성

모임의 공장의 불빛 공연 등이 있어 자연스럽게 활동적인 분위기에 같이 휩싸여 

들어갔습니다. 

독일오기 전에 70’년대에 유신독재철폐운동, 민주화운동을 같이 하면서 동시에 

여성운동이 뒷전으로 밀리는 시기도 경험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기도 했습

니다. 그러다 재독한국여성모임을 만나게 되면서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즐겁기도 

그리고 적극적이기도 하다가 모임 내의 충돌 상황 때에는 고민도 많이 하기도 하

였으나 지금도 회원으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이미 1989년에 총무직을 맡게 되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당시의 여성모

임의 내적인 상황이 반영된, 즉 여성모임의 내적인 갈등이 아직 뭔지 잘 모르는 

회원의 총무직이 그 당시의 상황을 극복하는데 좋을 것 같다는 회원들의 판단하

에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한 예가 1989년의 민협에의 가입여부 건입니다. 

여성모임 총회에서의 치열한 논쟁을 아직 잊을 수가 없습니다. 투표를 하여 아슬 

아슬한 표 차이로 가입이 결정되었으나 그 순간부터 내적인 갈등이 외형으로 확

실히 들어나게 되었다고 저는 봅니다. (자세한 해석은 여기서 생략: 한국과 독일

에서의 삶의 관계성) 

그러다 1991년 10월 총회에서 민협탈퇴를 결정하게 되면서 갈등을 종식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저 개인의견으로는 긍정적인 결정으로 평가합니다. 

민주화, 통일논의에의 참여여부와 아울러 여성문제로서 구체적으로 „제 2차 대전 

중 태평양 권에서 일어난 일본의 종군위안부“ 문제 건이 제시되게 되고 또한 독

일에 거주하는 한국인, 즉 이주민으로서 부닥치는 외국인 적대적인 행위와 그 정

치적 분위기 문제 그리고 2세들의 문화교육, 스스로의 독일어, 문화교육 등의 주

제들이 이 시기의 주된 사안들이었습니다.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회원들 내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관심분야를 행동으로 옮기

려 할 때 각 회원들의 의견이 다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뒤 배경 속에서 큰 행사를 한 것을 꼽아보면, 1990년에 „파독한국간호사 

25주년 행사“를 하면서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이것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그

리고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를 집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2

특히 왜 지금도 „재독한국간호사“라 하지 않고 „파독간호사“라 하는가?에 대해 많

은 이야기를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행사 이후서부터 지금까지의 저 개인적인 문제는 „물론 재독한국여성모임의 

주류 회원이 직업이 간호사로 여기로 이주하였지만 재독한국여성모임이 동시에 

간호사모임으로? 즉 여성모임회원의 정체성에 대해 회원들 사이에 아직도 의견차

이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들의 이주동기가 어떠하였던지 여기서 여성으로 만

난다고 봅니다. 

스스로의 독일어 실력을 연마하기 위해 독일어연수회를 하면서 기억하는 것은, 특

히 회원들의 자녀들은 한국말도 배우면서 서로 오랫동안 사귈 수 있었던 기회도 

되었다는 것과 재정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예를 들면 빡빡

한 거주공간을 이용하면서 시끌벅적하게 사느라고 서로 곤욕을 치르면서도 결과

적으로는 그러한 기회를 우리가 마련했다는 것에 지금도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1993년 베를린에서 „제 2차 대전 중 태평양 권에서 일어난 일본의 종군위안부

“에 관한 국제대회를 개최하면서부터 열심히 지금까지도 문제해결을 위해 여성모

임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들 스스로 „여성과 전쟁“ 그 피해자들의 

삶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가 하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대회 때 피

해자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하루 종일 그냥 울기만 한 것이 기억납니다. 또한 이 

일을 하면서 한국을 36년간 식민국으로 만들었던 나라의 일본여성들과 지금까지 

같이 일하면서 서로의 만남을 기피하던 감정을 극복하고 같은 여성으로서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중요한 의미를 던져줍니다. 

90년대 중반에 성년으로 접어드는 자녀들을 초청하여 „두 문화 사이에서의 부모

와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하면서 서로 다른 사회화 과정을 거친 두 세

대들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토론도 하고 연극도 하면서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시간도 기억에 남습니다. 

외국인 적대감정이 통독되고 나서 외형적으로 더 크게 될 때 과연 이 나라에서 

살 것인가? 하는 개인적인 질문도 하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투쟁데모에 참석도 

하고 공개서한도 열심히 써서 보내고 하던 일도 기억납니다. 

이 시기에 더욱더 공고히 된 것은 이러한 활동을 하다 보니 많은 연대단체들을 

사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혼자 활동하지 않고 같이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

한 것인가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월민중제와 제 다른 독일단체들의 후원과 연대

는 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오월민중제는 재유럽 제 민주한인단체들과의 만남의 

장소 또한 한국이주민으로서 서로 만나는 장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의 또 한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1993년부터 모든 회원들에게 주3

소록을 나누어 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군부독재시절 소위 민주화운동을 하는 

단체의 회원들은 정보부의 사찰을 감수했어야 했기 때문에 회원의 주소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었던 것입니다. 

1990년대 말부터 여성모임의 구조변경이 현실적으로 요청되었습니다. 조직구조개

편논의가 사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긴 하였습니다. 그 핵심은 지역중심의 여

성모임이 아니라 총회를 중심으로 하여 개별회원들의 참여를 높이고 총무단을 강

화하여 사업과 활동을 해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오랫동안의 조직구조개편작

업논의는 회원들이 모였다 집에 돌아 갈 때는 우울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했습

니다. „침체“라는 표현을 하면서도 계속 활동이 이어져 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

습니다. 

2002년에 조직구조를 개편하면서 2002년 1월에는 회원들의 자선적에세이를 한

국의 시민의 신문에 연재하는 일도 하고 „여성상담전화“를 개설하기도 하였습니

다. 

2003년에는 재독한국여성모임 25년을 기록하는 기념문집과 „여성모임사진첩“을 

만드느라고 엄청난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한 여름에 며칠 동안 같이 앉아 일을 

하면서 몸에 땀띠가 나던 기억도 있습니다. 또한 저의 경우 그 일을 준비할 동안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한국에 갔다 오고 아픈 가슴을 달래다 보니 제가 맡았던 책

임을 시간에 맞추어 못하는 바람에 책임추궁도 당하던 기억도 납니다. 결국에는 

했지만. 또한 49구제 날에 베를린 한 회원집에 모여 일을 하여야 하니까 그 회원

이 거기서 49제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던 기억도 납니다. 게다가 책을 인쇄

해주는 인쇄소를 잘못 만나 그로 인해 우리끼리 싸우고 하던 기억도 납니다.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명예가 생기는 일도 아닌데 미

친 듯이 이런 짓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리고 우

리는 그런 짓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또한 이 시기에 많은 여성모임회원들이 탈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에는 서로의 의견과 관점의 차이였습니다. 그로 인해 당분간 서로 만나는 것

이 부담스러운 시간도 있었습니다. 오늘 여기에 이제는 비회원으로 참석한 그 당

시의 회원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성모임 30주년을 같이 하게 되는 것에 저희들

이 서로 성장했다고 지금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은 인간사에서의 자연스

러움이라고 저는 봅니다. 같이 자리하게 된 것이 기쁩니다. 

여성모임이 아직도 비정부조직으로서 그리고 자조직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오후의 좌담회에서 많은 기억들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유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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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언론 자료 2008. 10. 1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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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08. 9. 15. 18:42



30 Jahre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


Sehr geehrte Damen und Herren, liebe Freunde,


wir feiern den 30. Geburtstag unserer Koreanischen Frauengruppe in Deutschland

und blicken zurück auf viele positive Erinnerungen und wichtige Aktivitäten, die wir

ohne Hilfe und Unterstützung nicht oder nicht in dem Umfang hätten durchführen

können. Gerade für uns Migrantinnen war und ist es stets ein Gefühl der Wärme,

nicht allein zu stehen. Hierfür möchten wir Ihnen noch einmal von ganzem Herzen

danken.

30 Jahre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 sind auch ein willkommener

Grund mit allen denen zu feiern, die uns auf unserem Weg begleitet haben.

Wir freuen uns, wenn auch Sie, als eine uns in besonderem Maße verbundene

Organisation, mit uns feiern und möchten Sie deshalb herzlich zu unserer

Geburtstagsfeier vom 10. Oktober 2008 bis 12. Oktober 2008 in Bielefeld-Ubbedissen

einladen. Die detaillierte Einladung fügen wir in der Anlage bei und würden uns über

Ihr Kommen freuen.


Mit freundlichen Grüßen

Mitfrauen der Koreanischen Frauengruppe in Deutsch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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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m 1.doc



Programm


Freitag, 10.10.08


18:00: Ankunft. Anmeldung


18.30: Abendessen


19:00: einander Kennenlernen


Samstag, 11.10.08


08:00-09:30: Frühstück


09:30-09:45: Eröffnung, Gedenkminute


09:45-11:15: Grußworte, Erinnerungen


11:15-11:30: Pause


11:30-12:00: 1. Vortrag: Die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


                                      von der Gründungszeit bis1980: Cho-Ruwwe, Kook-Nam


12:00-14:00: Mittagessen, Pause


14:00-15:00: II. Vortrag: Die Koreanischen Frauengruppe in Deutschland vom 1990 bis 2000: Dr.Yoo, Jung-Sook


III. Vortrag: Die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 heute: Choi, Sunju


15:00-15:30: Kaffeepause


15:30-18:00: Plenum


18:00-20:00: Festessen


20:00-21:00: Kulturprogramm 1: Trommelgruppe „Platzregen“, Tanzgruppe „KAYA“, Nami Morris, Bo-Sung Kim,

 

Myoung-Hyun Park


21:00- Kulturprogramm II: Nanjang


Sonntag, 12.10.08


08:30-10:00; Frühstück


10:00-11:00: Abschiedsrunde


11:00-12:00: Vollversammlung der KFG, Filmaufführung für die Gäste


12:00-13:00: Mittagessen


13:00- Abre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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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Jahre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


Sehr geehrte Damen und Herren, liebe Freunde, 

wir feiern den 30. Geburtstag unserer Koreanischen Frauengruppe in Deutschland und blicken zurück auf viele positive Erinnerungen und wichtige Aktivitäten, die wir ohne Hilfe und Unterstützung nicht oder nicht in dem Umfang hätten durchführen können. Gerade für uns Migrantinnen war und ist es stets ein Gefühl der Wärme, nicht allein zu stehen. Hierfür möchten wir Ihnen noch einmal von ganzem Herzen danken. 

30 Jahre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 sind auch ein willkommener Grund mit allen denen zu feiern, die uns auf unserem Weg begleitet haben. Wir freuen uns, wenn auch Sie, als eine uns in besonderem Maße verbun¬dene Organisation, mit uns feiern und möchten Sie deshalb herzlich zu unserer Geburtstagsfeier vom 10. Oktober 2008 bis 12. Oktober 2008 in Bielefeld-Ubbedissen einladen. Die detaillierte Einladung fügen wir in der Anlage bei und würden uns über Ihr Kommen freuen. 

Mit freundlichen Grüßen

Mitfrauen der Koreanischen Frauengruppe in Deutsch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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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inladung





2. Erinnerungen einer Tochter 
Yoon, Young-Kyoung

Mit der koreanischen Frauengruppe und mit Euch, den Mitfrauen, habe ich viele, sehr vielfältige, Erinnerungen und Verbindungen. Einige von diesen möchte ich heute gerne – leider nicht persönlich, aber durch meine alte Freundin Nami - mit Euch teilen:
  • Meine “Omma” war im Rahmen der Frauengruppe sehr aktiv und daher häufig unterwegs, entweder auf Wochenendseminaren oder auch mal länger, z.B. im L.A., USA. Manchmal nahm sie mich mit und ich sah viele “Tanten” und andere deutsch-koreanischen Kinder wieder, die aus ganz Deutschland angereist waren. Als Bochumerin bzw. später Bremerin war ich dabei ziemlich neidisch auf die Kinder aus Berlin, Frankfurt oder aus anderen großen Städten. Denn sie hatten, anders als ich in der kleinen Stadt, die Chance sich auch unabhängig von der Frauengruppentreffen zu sehen, zu musizieren, zu tanzen usw. Manchmal blieb ich aber auch zu Hause- mit “Babysittern”, die zum Teil auch “Tanten” aus der Frauengruppe waren und je nach Charakter mehr oder weniger streng waren....
  • Ein Sprachkurs für die Frauengruppe fand vor vielen Jahren in Bochum statt. Ich erinnere mich, dass meine “Omma” ständig unterwegs war, um irgendetwas zu organisieren. Aus Sicht des kleinen Kindes waren zu der Zeit überall koreanische Tanten, die super Deutsch sprachen, aber unbedingt noch besser Deutsch sprechen wollten. Um Geld zu sparen, wohnten einige Sprachkursteilnehmerinnen bei uns- in der nicht besonders großen Wohnung. Jeden Tag war viel Trubel. Es war eng und laut. Heute kann ich sagen, dass es ein toller und lustiger Sommer war. Damals, als Kind, habe ich wohl etwas gelitten. So, wie man als Kind halt leidet.
  • Während meines Austauschjahres an der Uni Maastricht belegte ich ein Seminar über “women’s rights”. Als ich eine Seminararbeit schreiben musste, kam mir sofort der Gedanke meine Arbeit der völkerrechtlichen Bewertung der begangenen Straftaten an den sog. “comfort women” zu widmen. Erst über Eure Arbeit und Eure Information war ich auf das Thema gestoßen. Auch Material von der Frauengruppe nutzte ich für die Seminararbeit. Meiner Professorin erzählte ich von der koreanischen Frauengruppe in Deutschland, als sie mich fragte, warum ich mich für diese Thematik interessierte.
  • Zu guter Letzt, bewundere ich besonders an Euch und der koreanischen Frauengruppe, dass Ihr nicht nur auf einer Arbeitsebene gut zusammenwirkt, sondern dass sich über die Jahre viele enge Freundschaften entwickelt haben; fast wie in einer großen Familie gibt es zwar Lästereien, Geschimpfe und Tränen, aber letztendlich – und das war schon als Kind mein Eindruck- halten alle zusammen. Eine wirklich schöne Erinnerung ist die Hochzeitsfeier meiner “Omma” in Bremen, zu der viele Mitfrauen mit vielen helfenden Händen kamen. Ohne Euch wäre das Essen nicht halb so gut und die Feier nicht halb so fröhlich gewesen. Immer wieder ist es daher schön, in Berlin “Omma” zu besuchen und so herzlich von den “Tanten” begrüßt zu werden.


3. Eröffnung

Liebe Gäste, Freunde und Mitfrauen der koreanischen Frauengruppe!

Ich möchte Ihnen ganz herzlich dafür danken, dass Sie sich die Zeit genommen haben und teilweise von weither gereist sind, um heute mit uns zu feiern. Heute begehen das 30jährige Jubiläum des Bestehens der koreanischen Frauengruppe in Deutschland und ich muss gestehen, dass es für mich ein sehr ergreifender Moment ist.

Blicke ich auf unsere gemeinsamen Jahre zurück, so kann ich sagen, dass die meisten Mitglieder in einer sehr konservativen und konfuzianischen Gesellschaft aufgewachsen sind. Sie gehören einer Generation an, deren Jugend und Schulzeit von der Armut der Nachkriegszeit des Koreakrieges gezeichnet war.

Mit großer Hoffnung im Herzen kamen sie in jungen Jahren hier in das weit entfernte Deutschland und widmeten sich engagiert ihrem Studium oder ihrem Beruf. Die Gründung der koreanischen Frauengruppe in Deutschland war unsere Antwort auf unser Bestreben für die Rechte der Frauen zu kämpfen. Seit der Gründung verging kein Jahr in dem wir keine Bildungsseminare abgehalten und unsere so gewonnen Erkenntnisse in die Tat umzusetzen versucht haben.

Solidarisch unterstützten wir Arbeiterinnen die in Korea unter der diktatorischen Wirtschaftsentwicklungspolitik gegen die Ausbeutung, unmenschliche Umwelts- und Arbeitsbedingen gekämpft haben. Für Rettungsaktion von KIM Dae-jung, MUN Bu-sik und KIM Hyun-Jang gingen wir auf die Straße und verteilten Flugblätter. Wir haben Spendenaktionen ins Leben gerufen, um die Arbeiterinnen in Korea in ihrem Kampf zu unterstützen. Auch der Erlös von selbst gemachten koreanischen Speisen floss in diese Spenden.

Bei all diesen Aktionen standen wir nicht allein da. Unsere deutschen Freunde und Ehepartner halfen uns bei der Verfassung deutscher Text. Nicht immer waren sie davon begeistert, mit Kind und Haushalt allein gelassen zu werden. Als eine Mitfrau nach einer Versammlung spät in der Nacht nach Hause kam, fand sie zum Beispiel ihr Bettzeug vor der Wohnungstür vor. Es kam auch schon vor, dass der besorgte Partner bei der Polizei eine Vermisstenanzeige aufgegeben hat. An dieser Stelle möchte ich mich aus tiefsten Herzen für all die Unterstützung bedanken. Mein Dank gilt auch den demokratischen Initiativen in ganz Europa, die mit uns für die Demokratisierung der Republik Korea gekämpft haben und bis heute gemeinsam mit uns jeden Mai die jährliche Gedenkfeier des Kwangju-Massakers ausrichten. Unbedingt erwähnen möchte ich auch die Organisationen terre des hommes und terre des femmes für ihre Solidarität im Bereich der Kinderbetreuung der koreanischen Arbeiterinnen. Ohne die finanzielle Unterstützung der Stiftung Umverteilen und der Frauen-Anstiftung wäre die Einrichtung des Frauentelefons nicht möglich gewesen. Beim Kampf um Entschädigung und Ehrenrettung der Opfer der sexuellen Sklaverei des japanischen Militärs und dem Solidaritätskampf gegen Flair Fashion in Iri/Korea waren das Evangelische Missionswerk in Südwestdeutschland und die Japanische Fraueninitiative Berlin Mitstreiter, auf die wir uns verlassen konnten. Das AKE-Bildungswerk ermöglicht uns durch seine finanzielle Zuwendung die Veranstaltung unser halbjährlichen Bildungsseminare hier in Bielefeld. Das Naturfreundehaus stellt uns heute diese Einrichtung zur Verfügung, in der wir, wie bei einem Besuch eines nahen Verwandten gemeinsam kochen und die ganze Nacht durch feiern können. Es ist mir eine großes Bedürfnis meinen tiefen Dank an all unsere Freunde, auch die hier nicht genannten, noch einmal auszusprechen.

Auch wenn nicht alles perfekt abläuft, hoffe ich dennoch, dass Sie uns mit der gleichen Freundlichkeit begegnen wie in den vergangenen 30 Jahren und vor allem das Fest genießen und mit Spaß und Freude mit dabei sind.

Vielen Dank

Kim-Morris, Soon-Im



4. Gratulation




5.Danksagung


Liebe Frauen, Freunde und Gäste,

die koreanische Frauengruppe, oder kurz einfach Frauengruppe, wird dreißig. Ein Anlass, den es gebührend zu feiern gilt. Auf einer Ihrer Versammlungen hat die Frauengruppe beschlossen, aus diesem Anlass hier auch Betroffene zu Wort kommen zu lassen. Und demokratisch wie die Frauengruppe nun mal ist, hat sie zudem beschlossen, dass ich auch ein paar Worte dazu beitragen soll. Wer die Frauen kennt, weiß, dass in solchen Momenten jeglicher Widerstand zwecklos ist und so habe ich mich dann auch gerne bereit erklärt, diese Herausforderung anzunehmen. So stehe ich hier denn auch nicht als Chronist der Frauengruppe. Die erfolgreiche Arbeit der Frauen soll an anderer Stelle gewürdigt werden. Ich stehe hier als Ehemann einer Mitgliederin vor euch. Und so sind meine Eindrücke auch höchst subjektiv und keinesfalls allgemeinverbindlich, aber vielleicht wird sich ja der eine oder andere Ehemann oder Partner doch in dem Einen oder Anderen wieder finden.

Fast auf den Tag genau 25 Jahre ist es nun her, dass ich erstmals mit der Frauengruppe konfrontiert wurde. Eines Dienstags Abends zu Beginn meiner Beziehung zu Gum-Hi verkündete sie nämlich: „Du ich gehe jetzt zur Frauengruppe.“ Na prima dachte ich in meiner fast noch jugendlichen Unbekümmertheit. Da fliegt also im Hintergrund ein Kampfemanzengeschwader mit. Das kann ja heiter werden. Und was soll ich sagen, es wurde heiter.

Nicht nur eine neue Frau, sondern ein ganzes Land, von dem ich bis zu diesem Zeitpunkt grade einmal wusste, dass es wie Deutschland geteilt ist und die Hauptstadt SEOUL heißt, rückte in den Mittelpunkt meines Lebens. Und das begann sich damit an dem Terminkalender der Frauengruppe auszurichten. Gestern haben wir hier einen kleinen Teil der Frauengruppenaktivitäten der letzten 30 Jahre in der Dia-Show Revue passieren sehen. An einen großen Teil diese Aktionen – und noch einigen anderen darüber hinaus – kann ich mich noch gut erinnern, weil ich selber mit dabei war: Als Essenverkäufer, Unterschriftensammler, Kulissenschieber, Fotograf oder schlicht als Chauffeur, Babysitter oder Trommelträger.

Oder aber, und das war die Mehrzahl der Aktivitäten, weil Gum-Hi ganz dringend auf jeden Fall dabei sein musste, mit der Konsequenz, dass ich allein zu Hause saß.

Manchmal hat sich dann natürlich vor allem in der ersten Zeit – und im nachhinein muss ich ausdrücklich sagen unbegründeter Weise – der Eindruck aufgedrängt, dass mir die Frauengruppe meine Frau wegnimmt.

Erst nach und nach lernte ich die Frauengruppe, oder besser die Frauen der Frauengruppe kennen. Damals noch junge Mütter in den Dreißigern, die sich nicht nur dadurch auszeichneten, dass sie die Herausforderungen in Familie und Beruf meisterten, sondern auch mit hohem Engagement für die Demokratisierung ihrer Heimat und die Rechte der Frauen eintraten. Ich lernte starke Frauen kennen, die sich zudem noch durch ihre enorme Warmherzigkeit auszeichneten. Von Kampfemanzen keine Spur.

Heute, nach immerhin 25 Jahren, sehe ich jung gebliebene Großmütter vor mir, die nichts an ihrer Warmherzigkeit oder ihrem Engagement eingebüßt haben.

Allerdings war es in den fünfundzwanzig Jahren nicht immer ganz einfach, neben der Frauengruppe zu bestehen. Manchmal fand ich, dass Gum-Hi Prioritäten einfach falsch gesetzt hat. Es war z.B nicht immer ganz einfach zu verstehen, warum z.B. eine Veranstaltung der Frauengruppe wichtiger als mein Geburtstag ist, den Gum-Hi statt mit mir mit euch in Bielefeld verbracht hat.

Wenn sie dann allerdings von den Frauengruppenseminaren zurückkam, todmüde und kaputt, hatte sie immer diesen eigenartigen Glanz in ihren Augen. Sie wollte mir immer sofort alles erzählen was sie erlebt hatte an diesen Wochenenden, schlief dann allerdings meist sehr schnell und manchmal mitten in einem Satz auf unserer Couch ein. Das Frauengruppenseminar forderte seinen Tribut. Wenn sie schlief, sah ich immer in eine entspanntes und zufrieden lächelndes Gesicht und musste jedes Mal selber lächeln, wenn sie kurz wieder aufwachte, sich offenbar an etwas erinnerte mir noch etwas erzählen zu wollen und mich auf koreanisch ansprach. Dieser Anblick entschädigte für Vieles.

Gum-Hi ist bei mir zu Hause. Das weiß ich ohne auch nur den geringsten Zweifel daran zu haben. Aber sie hat auch ganz tiefe Wurzeln, die ihren Ursprung ganz weit in der Ferne haben. Ich weiß, dass ich wenig dazu beitragen kann, diese tiefen Wurzeln zu ernähren und ihre Gesundheit und Festigkeit zu erhalten. Dazu bedarf es Heimat und nicht zu Hause. Und die Frauengruppe ist ein gutes Stück Heimat für Gum-Hi geworden, die ihre tiefen Wurzeln gesund und am Leben hält. Das gibt ihr die Stabilität und Festigkeit, die sie braucht um auch mich in meinem Leben zu unterstützen und mich aufzufangen, wenn ich mal ins Straucheln komme.

Und dafür liebe Frauen, danke ich euch. Ich bin froh dass es euch gibt und hoffe auf mindestens weitere fünfundzwanzig Jahre mit Gum-Hi und euch.


Ralph Prudent
Bielefeld, 11. Oktober 2008 



6. 30 Jahre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




7. Fotos von Feier 10.-12.Okt.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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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tivität/- Vernetzungsarbeit 2008. 7. 1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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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tivität/- Vernetzungsarbeit 2008. 7. 12. 16:59


info_mahnwache13_8_0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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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언론 자료 2008. 5. 31. 21:57

 kor_aktuell_30jahre_doc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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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언론 자료 2008. 5. 31. 21:54


한겨례 신문기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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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언론 자료 2008. 5. 31. 21:47


재독여성모임 창립 30 주년 축전 참관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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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wnloed


Bekanntmachung.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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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총회와 세미나 2007. 10. 1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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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tivität/- Seminaren 2007. 10. 17. 16:45

Einladung

zum Herbstseminar am 16.-18.11.2007


Liebe Freund/-innen

Liebe Mitglieder der Koreanischen Frauengruppe,


wie laden Sie/Euch herzlich zu unserem Seminar ein.

Auch in diesem Jahr haben wir ein offenes Seminar vorbereitet, in dem wir generationsübergreifend 

über das Thema "neuere koreanische und japanische Geschickte aus Sicht der Frauen" diskutieren 

wollen. Im diesen Seminar wollen wir über die Stellung und die Politischen Aktivitäten der Frauen 

in der Zeit vor und nach der Kolonialzeit informieren.


Hierzu haben wir zwei junge koreanische und japanische Wissenschaftlerinnen als Referentinnen 

eingeladen.Darüber hinaus wollen wir disktieren, ob es ein spezifisches Leben in dieser 

Gesellschaft als asiatischer Migrant/-innen mit kolonialer Geschichte gibt.

Die seit über 15 Jahre anhaltende Solidaritätsarbeit mit der japanischen Fraueninitiative in Berlin, 

vor allem über die Zwangsprostitution koreanischer Frauen durch die japanische Armee während 

der Asien-Pazifik-Krieges, führte zur Planung dieses Seminars.


Wir freuen uns auf Eure/Ihre Teilnahme an unserer Veranstaltung und hoffen auf reges Interesse.


Mit freundlichen Grüßen,


Die Vorstandsfrauen der Koreanischen Frauengruppe in Deutschland


Cha-Jo An (안차조)

Tel.: 030-602 41 19 
e.mail: anchajo@hotmail.com 


Kim-Morris, Soon-Im (김순임)

Tel.: 030-85 11 541 
e.mail: myobeop@hanmail.net



*Übernachtung + Vollverpflegung fürs Wochenende: 50 EUR + 5 EUR für Bettwäsche


* Seminarteilnehmer am 17.11.07: 8 EUR (Mittagessen + Kaffee) und zum Abendessen werden 

alle TeilnehmerInnen eingeladen (Koreanisches Essen)


Anmeldung bis zum 28.1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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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Deutsch 2007. 10. 1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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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ung "zuha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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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언론 자료 2007. 9. 30. 18:54

여성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아시아여성영화제>
사단법인 황해도 한뜻계 보존회가 개막식에 축원굿으로
                                  

안숙영박사


재독한국여성모임이 주최한 <아시아여성영화제>(Asian Women’s Film Festival)가 지난 9월 23일 저녁 한국의 임순례 감독이 만든 „와이키키 브라더스“(Waikiki Brothers)의 상영을 끝으로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베를린 아시아태평양 주간“(Asien-Pazifik-Wochen Berlin) 행사의 하나로 지난 9월 19일부터 5일 동안 아르제날 극장(Kino Arsenal)에서 열린 이 영화제에는 많은 관객들이 찾아옴으로써, 유럽에서 아시아와 여성을 주제로 한 영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서울여성영화제가 협력하고 주독 한국대사관 문화원,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및 삼성전자 등이 후원한 이 행사에서는, 아시아 8개국의 여성감독들이 만든 다채로운 영화들이 소개되어, 여성의 관점에 서서 아시아 각국의 급속한 발전을 바라볼 수 있는 뜻깊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독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영화의 발전사를 보여주고자 마련된 „한국영화 회고전“에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만들어진 고전영화 5편이 상영되었다. 근대화과정에서의 여성의 삶 및 여성의 성을 소재로 한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자유부인“, „갯마을“, „지옥화“ 및 „김약국의 딸들“ 모두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당시에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가를 설득력있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당시의 한국여성의 삶을 21세기에 다시 돌아보면서, 여성의 삶의 조건이 이후 어떻게 변화되어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문신에 담긴 비밀을 배경으로 젊은 두 여성의 사랑을 그린 개막영화 „거미 나리꽃“(대만 2007)을 비롯한 11편의 극영화에서 나타난, 가족, 젠더, 사랑, 노동, 세계화, 이주 및 전통 등에 대한 아시아 여성으로서의 비판적 접근은 관객들에게 커다란 호소력을 가지고 다가갔다. 다문화적 사회의 복잡성에 촛점을 맞춘 „길게 째진 눈“(말레이지아 2004), 고독과 침묵속에서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했던 한 여성의 삶에 무게중심이 놓인 „침묵의 신부“(베트남 2005), 한 가족이 과거의 슬픈 가족사와 비판적으로 조우하는 과정을 그린 „샤라“(일본 2003), 결혼식 날 밤 남편이 사라지면서 한 여성이 자신안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추적한 „하룻밤 남편“(태국) 및 고독과 충족되지 않는 그리움을 화면에 담아낸 „여름이 가기 전에“(한국 2006) 등은, 아시아라는 공간에서 현대라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그러나 다양하기 그지없는 여성들의 삶의 면면을 감동적으로 드러내 보여주었다.  

한국, 일본 및 중국에서 온 다큐멘터리 영화들도 오늘날 아시아에서 나타나고 있는 복잡한 사회적 현상들을 드러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예를 들어, „디어 평양“(일본 2005)은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구조가 한 가족내의 성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어 관객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수천명의 가난한 농촌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기차로 여행하는 과정을 기록한 „희망의 철도“ (중국 2001)는 중국내에서의 새로운 이주현상을 잘 부각시켰으며, „쇼킹 패밀리“(한국 2006)의 경우는 가족안에서 망각되어 가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아가는 세 여성의 시선을 기록, 가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노가다“ (한국/일본 2005)는 한국과 일본의 건설현장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에 맞서 싸우는 일용직 노동자의 현실을 설득력있게 담아냈다. 이 영화를 만든 김미례 감독은 영화 상영후 감독과의 대화에서, 이 영화가 현장 및 공원에서도 상영되어 이들 노동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아시아에서 영화를 만들기 위한 여성들의 생존 가이드“라는 주제로 9월 22일에는 심포지움이 열리기도 했다. 남성이 지배적인 영화현장에서 여성감독으로서 겪고 있는 어려움, 아시아에서 영화를 만드는 여성감독들간의 네트워크 및 아시아와 유럽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감독들간의 네트워크를 구성할 필요성 등을 둘러싸고 생산적인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독일에서 여성과 노동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온 재독한국여성모임은, 이번 영화제 개최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간의 대화를 위한 새로운 장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여성문화라는 새로운 여성문화의 지평을 열어나가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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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Deutsch 2007. 9. 28. 14:59

Asian Women's Film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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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을 다운로드 해서 출역하세요.

kor_asianwomens_progr.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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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19일-23일 베를린 아시아태평양주간
프로젝트: 베를린-아시아여성영화제 기획안

Asien Women’s Film Festival in Berlin
September 19-23, 2007: Asia-Pacific Weeks Berlin 2007

 




- 베를린 아시아태평양주간은 독일 베를린 클라센로터리 재단
  (DKLB) 후원

이번 베를린 아시아태평양주간의 슬로건 „아시아-태평양: 세계를 변화시키자“ 하에 베를린 시 주최로 아시아와 관련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중심으로 한 여러 기획물을 통하여 2주일간 개최되는 대규모의 행사에서 한 문화기획물로 „베를린-아시아여성영화제“가 실시됩니다. (아시아태평양주간 (www.APWberlin.de))
아시아태평양주간은 1997년부터 시작하여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행사로서 국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하며 2년마다 개최되는 행사입니다.  지난 2005년에는 칠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300여 개의 경제, 문화, 학문행사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재독베를린한국여성모임 (사단법인; www.koreanische-frauengruppe.de) 은 이미 약30년 전부터 조직되어 독일사회에서 여성과 관련하여 제 정치, 사회, 문화활동을 하면서 유럽과 아시아와의 대화를 구축해 나가면서 여성문화의 미래지형을 바꿔나감과 동시에 글로벌 여성문화를 창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아시아여성영화제 프로그램 개요

- 베를린-아시아여성영화제는 제 9회까지 진행된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소개된 필름들을 중심으로 하여 장르에 따라 선정하여 유럽관객들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며 동시에 특히 한국의 영화와 필름들을 유럽 독일 수도 베를린에 소개하는 장의 역할을 한다.
- 아시아여성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현대사회, 여성, 이주, 노동, 세계화 등을 다룬 필름들을 소개할 것이며
- 또한 이번 베를린-아시아여성영화제에서는 독일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는 한국영화의 발전사를 소개하기 위해 „회고전“을 통해 한국의 고전영화 중 „여성 성“, „근대화 속에서의 여성“ 등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여주려고 기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의 영화인의 교류, 발굴, 그리고 시각의 교류를 하는 장을 만들어 아시아와 유럽의 영화인과 제작자가 함께 좀 더 강화된 협력사업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또한 이 기회에 한국영화와 영화인을 발굴 지원하는 역할도 할 수 있기 위하여 아시아 영화 중 가능한 한 많은 한국영화와 필름들을 유럽 독일에 소개한다.
- 아시아 8개국, 특히 한국영화가 많이 상영된다.

주관:
사단법인 독일베를린한국여성모임 (Koreanische Frauengruppe in Berlin e.V.) „베를린-아시아여성영화제“실행위원회 (www.koreanische-frauengruppe.de)

주최:
베를린아시아태평양주간 2007년
사단법인 재독베를린한국여성모임

협력파트너:
서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이혜경: www.wffks.or.kr)
독일 베를린 사단법인 시네마테크협의회 Arsenal (Die Freunde der deutschen Kinematik e.V.) (www.fdk-berlin.de)

후원기관:
주독일 대한민국대사관 한국문화원 (원장: 노태강) 베를린
www.germany.korean-culture.org
한국 재외동포영화제 (집행위원장: 김강수)    www.coreanfilm.net
독일 에센시 아시아재단 (Asienstiftung e.V.)    www.asienhaus.de
한국영상자료원    www.koreafilm.or.kr
한국독립영화협회    www.coincine.co.kr
제 재독한인단체

협찬기업:
삼성
베를린 호텔, 상점, 레스토랑 (예정)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인천문화재단
상영관:
베를린 극장 아르제날 (베를린 시네마테크협의회 소속 극장)
* 베를린 포츠다머플라츠에 위치하고 있는 이 시네마테크협의회는 극장 아르제날 만이 아니라 영화박물관 그리고 영화아카데미가 같이 있으며 이 지역은 영화전문적인 색채를 가지고 많은 다른 영화관 또한 상가, 회사 특히 관광객들이 수 없이 오가는 곳이다. 베를리날레가 열리는 중심지역이기도 하다.

영화제기간:
2007년 9월 19일-23일

상영영화:
약 35여편의 단편과 장편필름 (90분을 기준으로 한 26-28 개의 프로그램: 극영화, 다큐멘터리, 고전영화 등)이 두 상영관에서 상영된다.

부대프로그램:
심포지움: 유럽과 아시아 영화인의 만남과 대화
개막식과 폐막식: 한국 굿 소개 

대상: 영화를 사랑하는 유럽관객들과 영화인 그리고 재독동포 또한 독일의 아시아이주민

유정숙 Dr. Jung-Sook Yoo  (재독베를린 한국여성모임 베를린-아시아  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연락처: Erkelenzdamm 27, 10999 Berlin / Germany
전화: +49-30-6110 7109    핸드폰: +49-176-2948 5773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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