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료실/- 언론 자료

여성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아시아여성영화제>, 안숙영 박사, 2007

여성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아시아여성영화제>
사단법인 황해도 한뜻계 보존회가 개막식에 축원굿으로
                                  

안숙영박사


재독한국여성모임이 주최한 <아시아여성영화제>(Asian Women’s Film Festival)가 지난 9월 23일 저녁 한국의 임순례 감독이 만든 „와이키키 브라더스“(Waikiki Brothers)의 상영을 끝으로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베를린 아시아태평양 주간“(Asien-Pazifik-Wochen Berlin) 행사의 하나로 지난 9월 19일부터 5일 동안 아르제날 극장(Kino Arsenal)에서 열린 이 영화제에는 많은 관객들이 찾아옴으로써, 유럽에서 아시아와 여성을 주제로 한 영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서울여성영화제가 협력하고 주독 한국대사관 문화원,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및 삼성전자 등이 후원한 이 행사에서는, 아시아 8개국의 여성감독들이 만든 다채로운 영화들이 소개되어, 여성의 관점에 서서 아시아 각국의 급속한 발전을 바라볼 수 있는 뜻깊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독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영화의 발전사를 보여주고자 마련된 „한국영화 회고전“에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만들어진 고전영화 5편이 상영되었다. 근대화과정에서의 여성의 삶 및 여성의 성을 소재로 한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자유부인“, „갯마을“, „지옥화“ 및 „김약국의 딸들“ 모두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당시에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가를 설득력있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당시의 한국여성의 삶을 21세기에 다시 돌아보면서, 여성의 삶의 조건이 이후 어떻게 변화되어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문신에 담긴 비밀을 배경으로 젊은 두 여성의 사랑을 그린 개막영화 „거미 나리꽃“(대만 2007)을 비롯한 11편의 극영화에서 나타난, 가족, 젠더, 사랑, 노동, 세계화, 이주 및 전통 등에 대한 아시아 여성으로서의 비판적 접근은 관객들에게 커다란 호소력을 가지고 다가갔다. 다문화적 사회의 복잡성에 촛점을 맞춘 „길게 째진 눈“(말레이지아 2004), 고독과 침묵속에서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했던 한 여성의 삶에 무게중심이 놓인 „침묵의 신부“(베트남 2005), 한 가족이 과거의 슬픈 가족사와 비판적으로 조우하는 과정을 그린 „샤라“(일본 2003), 결혼식 날 밤 남편이 사라지면서 한 여성이 자신안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추적한 „하룻밤 남편“(태국) 및 고독과 충족되지 않는 그리움을 화면에 담아낸 „여름이 가기 전에“(한국 2006) 등은, 아시아라는 공간에서 현대라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그러나 다양하기 그지없는 여성들의 삶의 면면을 감동적으로 드러내 보여주었다.  

한국, 일본 및 중국에서 온 다큐멘터리 영화들도 오늘날 아시아에서 나타나고 있는 복잡한 사회적 현상들을 드러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예를 들어, „디어 평양“(일본 2005)은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구조가 한 가족내의 성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어 관객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수천명의 가난한 농촌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기차로 여행하는 과정을 기록한 „희망의 철도“ (중국 2001)는 중국내에서의 새로운 이주현상을 잘 부각시켰으며, „쇼킹 패밀리“(한국 2006)의 경우는 가족안에서 망각되어 가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아가는 세 여성의 시선을 기록, 가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노가다“ (한국/일본 2005)는 한국과 일본의 건설현장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에 맞서 싸우는 일용직 노동자의 현실을 설득력있게 담아냈다. 이 영화를 만든 김미례 감독은 영화 상영후 감독과의 대화에서, 이 영화가 현장 및 공원에서도 상영되어 이들 노동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아시아에서 영화를 만들기 위한 여성들의 생존 가이드“라는 주제로 9월 22일에는 심포지움이 열리기도 했다. 남성이 지배적인 영화현장에서 여성감독으로서 겪고 있는 어려움, 아시아에서 영화를 만드는 여성감독들간의 네트워크 및 아시아와 유럽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감독들간의 네트워크를 구성할 필요성 등을 둘러싸고 생산적인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독일에서 여성과 노동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온 재독한국여성모임은, 이번 영화제 개최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간의 대화를 위한 새로운 장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여성문화라는 새로운 여성문화의 지평을 열어나가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