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으로 고민하고 연대하는 단체
-김순임-
1980년 5월 TV와 라디오를 통해서 접하게 된 광주 5월 항쟁의 무참한 소식은 그 때까지 안일무사주의로 살아온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체험하게 했다. 광주에서 어린 중 고등학생들이 두루미에 꾀인 조기들처럼 묶여서 군인들의 총칼위협을 받으며 끌려가고 있는 모습을 평화로운 독일 안방에 앉아서 TV를 시청하는 나는 분노와 절망의 참담한 감정의 회오리를 정리하기 어려웠다. 나는 나와 가정, 나와 사회, 나와 조국, 나와 세계는 어떠한 연관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이렇게도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내 감정이 내동댕이 쳐버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때까지 철저한 반공정신으로 무장된 나는 빨갱이와 간첩들이 우글거린다는 베를린에서 의식적으로 교포사회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하여 서로 의사소통을 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8개월 된 딸을 업고 남편과 함께 FU(베를린 자유대학)교정과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서명을 받거나 미국정부에 항의 편지를 보내는 등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는 교포나 독일인들이 있음을 알고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나는 얼마 후 내 친정이 있는 광주에서 그리고 내 조국에서 그런 살상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충격을 받는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이 전에도 보도망을 통해서 많은 처참한 종족분쟁들을 접하면서 그토록 나를 움직이는 감정의 물결은 경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한 순간이었지만 나에게 가정과 사회, 그리고 인류 사이에 거부할 수 없는 어떤 고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경험하는 귀중한 체험이기도 했다. 그 체험은 안일무사주의와 반공의 옷을 벗어버리게 하였고 여성모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인 것 같다.
이따금은 여성모임 세미나의 주제들이 약간은 황당한 것들도 있었지만 스스로 배우면서 서로 도우며 운영해 나가는 여성모임의 운영방침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민주적인 토론방법과 결정을 존중하는 여성모임 사업계획과 실천방법은 토론과정이 너무 길어서 실천할 수 없는 예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일부회원들에게는 어느 때는 가슴이 답답해오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다.
사업내용은 주로 조국의 정치사회 문제를 독일과 국제무대에 여론화하여 국제연대를 발원하는 것이어서 여성모임이 갖고 있는 특유의 역동성과 견제력이 적당히 절충되어 잘 진행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주민여성단체로서 우리는 너무 조국애와 향수로 우리의 사업을 일관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1980년 광주항쟁이 광주에서 터졌기 때문에 그렇게 내가 충격 받았다고 판단했던 순간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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