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재외 동포영화제 서울 20-23.10.2006 더보기 제 3회 재외동포 NGO 대회 서울 25-27.10.2006 더보기 Lieblingsgeschichte -Sun-Ju Choi 더보기 Lesung "ZUHAUSE" in Kulturabteilung Botschaft d. Republik Korea, Berlin 29.09.2006 Lesung "zuhause" Einladung zur Buchpräsentation vonZUHAUSE Erzählungen von deutschen Koreanerinnen,herausgegeben von Koreanische-Frauengruppe in Deutschland, Heike Berner, Sun-ju Choi Lesung und Einführung mit Bildmaterial in die Migrationsgeschichte der koreanischen Krankenschwestern in Deutschland mit anschließendem Gespräch mit Autorinnen und Herausgeberinnen. Ort: Kulturabteilung Botschaft d.. 더보기 Programm Lesuung "zuhause" am 29,09,2006 더보기 봄세미나 28.-30.06..2006 더보기 Buch "zuhause", Erzählung von deutschen koreanerinnen zuhauseErzählungen von deutschen KoreanerinnenISBN 3-935936-52-4 | 160 Seitenerschienen April 2006 bei Assoziation AHrsg.: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 Heike Berner und Sun-Ju Choi ::Buch Bestellen:: » Die [koreanische Frauen-]Gruppe war eine Schule für mein politisches Bewusstsein, sie war ein Schwebebalken, auf dem ich ständig übte, mein Gleichgewicht in Deutschland zu halten. « Vi.. 더보기 Einladung zur Buchpräsentation von "ZUHAUSE" 29.09.2006 Einladung zur Buchpräsentation vonZUHAUSE Erzählungen von deutschen Koreanerinnen,herausgegeben von Koreanische-Frauengruppe in Deutschland, Heike Berner, Sun-ju Choi Lesung und Einführung mit Bildmaterial in die Migrationsgeschichte der koreanischen Krankenschwestern in Deutschland mit anschließendem Gespräch mit Autorinnen und Herausgeberinnen. Ort: Kulturabteilung Botschaft der Republik Korea.. 더보기 신뢰와 우정의 문이 열리는 곳 -송현숙- 신뢰와 우정의 문이 열리는 곳 -송현숙- 나는 1972년 독일에 도착해서 아주 작은 도시의 한 병원에서 4년간 간호보조사로 근무했었다.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 1977년 함부르크로 이사를 한 후, 학생기숙사에서 살게 되자 한국 사람들과 만나는 날이 점점 적어갔다. 병원에서 같이 근무하며 친하게 지낸 친구들은 다시 귀국을 했거나 아니면 다른 도시로 가서 자기 생활에 바빠 서로 간의 연락도 끊겼다. 대학에서는 나이가 들어 공부를 하려고 하니 배워야할 것도 많고 독일어도 새로 익혀야 했다. 또 독일친구와 연애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한국 사람들과 가깝게 어울리지 않아도 잘 생활해 나갈 줄 알았다. 그런 후 1년이 지나서부터 무엇인가 나 자신이 한국과 아주 멀어진 것 같고 나의 정체성이 모두 상.. 더보기 아량과 인성으로 우리의 능력을 연마하는 곳 -김현숙- 아량과 인성으로 우리의 능력을 연마하는 곳 -김현숙- 여성모임과 나와의 첫 만남은 아마도 1977년 Frankfurt의 한 회원 집에서였다. 여성모임이 발족되기 이전이었고 독일의 아시아 간호사추방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모였었다. 만 명의 서명을 모으기 위한 서명서를 작성하고 일을 분담하고 또한 이 사실을 각 도시마다 한국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도 토론하였다. 독일 정부와 정치 그리고 외국인법을 문제화시키며 외국인 간호사 추방에 반대하는 활동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의 사고방식과 지식 그리고 도덕관념으로는 정치, 경제 또는 사회운동을 하는 것은 남자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활동에 동참함을 계기로 나의 삶과 생활에 변화가 .. 더보기 아기 걸음마에서 뚜벅뚜벅 걷기까지 -김양순- 아기 걸음마에서 뚜벅뚜벅 걷기까지 -김양순- 나는 독일에 간호사로 왔다가 브라질에 이민 가서 가족을 이루었고, 그곳에 살면서 그곳의 문화와 풍습 그리고 그 국민성이 나에게 잘 맞아 내 것으로 알고 살다가, 하던 사업이 안 되는 바람에 결국 14년의 브라질 생활을 뒤로하고 독일로 다시 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독일생활에 다시 적응하기가 너무나 어려웠고, 특히 몸도 마음도 독일에서의 생활을 받아드리지 않았다. 이제야 어느 정도 자리도 잡히고 적응도 되어 내 삶에 대한 회고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브라질에서 돌아온 후 그게 1988년이었다. 당시 여성모임 이숙자 회원의 권유로 그 당시 뮌헨의 김현숙 회원 집에서 열린 여성모임 대표회의에 참석하게 되는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그 회의에 참석하게된.. 더보기 서로 인간적으로 보호해 주는 곳 -박인숙- 서로 인간적으로 보호해 주는 곳 -박인숙- 나는 독일에 와서 약 10년 간 한국인과의 접촉이 없이 살았었다. 우연히 클라우젠호프에서 한-독 가정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여성모임회원이었던 장혜숙을 사귀게 되었다. 나는 에센에 살고 장혜숙은 보쿰에 살다보니, 자녀들과 남편들도 서로 사귀게 되었다. 여성모임에 나와 보라는 권유를 받고 여성모임에 나가보니 힘센 여성들이 많았다. 그 동안에 한국어를 많이 잊어버리고 또한 독일어도 뭐 그렇게 능통한 상태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주눅이 들었다. 김양순 회원 비슷하게 삶이 뭔가 뒤죽박죽 되는 느낌이었는데, 세미나 참가이후 집에 와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나 자신이 어떻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성모임회원들이 능력이 많으니 내.. 더보기 ÜBER UNS DownloadWILLKOMMEN auf der Homepage von Koreanischer Frauengruppe in Deutschland Wir sind Koreanerinnen, von dennen die Mehrzahl in den 60er und 70er Jahren nach Deutschland gekommen ist, um hier als Krankenschwestern zu arbeiten. Wir setzen uns mit dem Thema 'Frau in der Migration' auseinander. Unser Ziel ist es, uns in dieser Gesellschaft selbst zu positionieren und uns Zukunkuftsperspektiven .. 더보기 내 삶의 여정의 동반자 -유정숙- 내 삶의 여정의 동반자 -유정숙- 이제 나의 독일 삶이 19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 중에서 약 16년 간 나는 여성모임에 몸을 담고 있는 셈이다. 만약에 재독한국여성모임이 이 독일 땅에 없었다면 여기서의 나의 삶이 어떠하였을까? 하고 언젠가 나는 질문을 해보았다. 그런데 상상을 해 보려고 한참 이리 저리 회고를 해 보았으나 결국에는 상상이 안돼 이 질문을 잊기로 하였다. 결국 나의 삶에서 여성모임이 그 만큼 이미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삶의 여정을 동반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현재에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현재 나는 우리 여성모임의 총무직을 맡고 있다. 그러니까 1989년에도 한 번 이 직을 맡았으니 두 번째로 다시 맡은 셈이다. 그 당시의 여성모임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 더보기 세계인으로 고민하고 연대하는 단체 -김순임- 세계인으로 고민하고 연대하는 단체 -김순임- 1980년 5월 TV와 라디오를 통해서 접하게 된 광주 5월 항쟁의 무참한 소식은 그 때까지 안일무사주의로 살아온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체험하게 했다. 광주에서 어린 중 고등학생들이 두루미에 꾀인 조기들처럼 묶여서 군인들의 총칼위협을 받으며 끌려가고 있는 모습을 평화로운 독일 안방에 앉아서 TV를 시청하는 나는 분노와 절망의 참담한 감정의 회오리를 정리하기 어려웠다. 나는 나와 가정, 나와 사회, 나와 조국, 나와 세계는 어떠한 연관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이렇게도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내 감정이 내동댕이 쳐버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때까지 철저한 반공정신으로 무장된 나는 빨갱이와 간첩들이 우글거린다는 베를린에서 의식적으로 교포사회에서 고립된 생활을.. 더보기 공부가 싫었던 말괄량이의 좌절... (송금희) 공부가 싫었던 말괄량이의 좌절...송금희(심리치료사, 보육교사) 한국은 내가 태어나 자라고 사춘기를 보낸 '모국'이다. 그러나 한국은 내가 벗어나고 싶었던 나라이기도 했다. 30여 년 동안 독일 생활을 하면서 항상 향수에 젖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가 있을 때면 여전히 불편해 하는 나를 느낀다. 왜 그럴까? 한국에서 살던 시절의 열등감이 해소되지 않은 탓일까? 나는 팔 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 시절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랬듯이 유교적인 교육을 철저히 받고 자라난 우리 어머니는 나 역시 아들이길 바라셨다. 아들이길 바랬던 막내딸은 이번에는 '여성스럽게' 자라나 주길 바랬던 당신의 뜻과는 달리 수줍음을 모르는 사내아이 같았다. 위로 세 언니들이 있었기에 내 또래의 다른 여자 친구들 보다 나 자신.. 더보기 사랑과 믿음이 긷든 우리들의 집 -안차조- 사랑과 믿음이 긷든 우리들의 집 -안차조- 여성모임의 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것은 나에게는 우연한 일이 아니다. 1966년 10월 Niedersachsen Verden의 시립병원에 근무를 하고 있을 때 한국 유학생과 인연을 맺어 베를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아이 둘을 낳았다. 병원 근무와 집안 일로 보낸 나의 첫 독일생활은 나의 삶에 대하여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아니, 나의 위치에 대한 의식 없이 살았었다. 아이들 아빠와 헤어지던 해인 1980년. 나의 끝없는 괴로움을 풀고 싶은, 한국말로 나의 아픔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한없이 헤매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함께 베를린에 있는 한국여성모임에 참석했다. 그 당시 여성모임에서는 한국여성노동자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나는 꿔다놓은.. 더보기 아들 기대 속 셋째 딸로 태어나... (조국남) 아들 기대 속 셋째 딸로 태어나...조국남(재독한국여성모임 회원) 모르는 사람이 내 이름을 보면 거의가 남자라 짐작을 해서 그런지 나는 가끔 남자가 되기도 한다. 한국 공관에서 보내오는 우편물의 수신인 난에는 아주머니(Frau) 대신 아저씨(Herr)란 호칭이 딸려 온다. 한국 사람들도 이러한데 하물며 한글이름자가 풍기는 울림이나 뜻에 서투른 독일사람들이야 어떠하랴. 이곳 독일 관청에서도 일반적으로 외국인의 이름에서 남녀의 성구별이 어려우면 우선은 남자로 간주한다. 이런 상황은 남성중심시대의 산물로, 아니면 현시대의 산 증거로 봐야 할까? 자녀들은 자라면서 대개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한다. 내가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만큼 그 기대에 상응하는 자녀노릇.. 더보기 Publikationen Publikationen Bücher und Filme ▶ Dokumentation "Unterschriftenaktionen gegen die Ausweisug koreanischer Krankenschwestern", 1979 ▶ "Made in Korea" : Broschüre über den Arbeitskampf der Arbeiterinnen bei "Flair Fashion", in Zusammenarbeit mit Terre des Femmes, 1989 ▶ "Die Bescheidenheit ist vorbei" : Darstellung der Arbeitsverhältnisse bei "Flair Fashion" in Zusammenarbeit mit Terre des Femmes, 1.. 더보기 배움의 터, 새로운 무늬 -조국남- 배움의 터, 새로운 무늬 -조국남- 가끔 나는 한 인간의 삶의 모습을 구체화시켜서 알록달록한 색실로 짜 올라가는 직물이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인간이 태어난다는 것은 이미 날실이 팽팽히 죄어진 베틀 앞에 마주 앉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각 개개인이 자기의 인생이라는 천을 짜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느 종류의 그리고 무슨 색상의 실이 선택되어서 어떤 무늬가 짜여 나올까 하는 호기심도 함께 천에 박힌다. 여성모임은 내가 독일 사회에서 한 이주민여성으로서의 직물을 짜나가는데 늘 새로운 무늬를 제공해 주었다. 조직의 사업과 활동 속에서 얻는 성취감이나, 회원들 간에 맺어지는 우애, 한국에서 온 이주민 1세 여성으로서 찾아가는 나의 위치와 입장, 아이들의 성장, 나 스스로의 자립 등의 셀 수 없는 문양.. 더보기 검은 머리 파뿌리되도록 이방인... (안차조) 검은 머리 파뿌리되도록 이방인... 안차조(재독한국여성모임 회원) 독일에서 나의 삶은 올해 33년째가 된다. 그리고 독일국적을 취득한 지도 22년이 되어, 독일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살고 있다. 나는 생활 속에서 필요에 따라 한국인이 되고, 또 독일인이 되기도 했었다. 지금에 와서 그 원인들을 분석해보면, 매우 복잡하며 애매한데, 문제는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나의 행동양식을 은연중에 요구한 것에도 큰 몫이 있다. 당시 독일인들은 독일문화로의 적응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동양 여성의 수동적 이미지를 당연하게 요구했다. 이 모순된 요구는 이중문화권에서 사는 많은 사람들이 때때로 마주하는 공통적인 차원의 것이다. 그래서 사회생활에서 나 자신과의 갈등을 자주 겪었다. 얼마 전까지도 나는 자.. 더보기 따뜻한 포용 속에서 누리는 연대감 -한정로- 따뜻한 포용 속에서 누리는 연대감 -한정로- 여성모임과 내가 첫 인연을 맺은 시기는 여성모임이 창립된 몇 년쯤 후였던 것 같다. Neukoelln의 한 가정집에서 만나는 여성모임에 참석하면서 첫 접촉을 맺었다. 그 뒤 나의 학교생활 시작 등으로 바쁘면서도 TAM의 모임에 간혹 참석했었다. 그 당시 회원들에 대한 첫 인상은 처음 오는 사람에게 따뜻하거나 친절하게 대하면서 적극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줄 것 같은 분위기가 적어 보여서, 마치 관청에 온 것 같은 조금 냉정한 분위기로 느껴졌었다. 그렇다고 회원이 되기를 간청하거나 설득하는 시도도 없었기에, 개개인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의사전달이 존중되고 개개인의 입장을 중요시하는 단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후 여성모임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일은 간.. 더보기 어려운 출국(김순임) 어려운출국김순임 1966년 4월 28일 김포공항은 독일 라인마인 지역으로 취업차 출국하는 128명의 간호사들과 그들을 전송 나온 가족, 친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날 선배언니와 나를 제외한 모든 간호사들은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있어서 힘든 노동의 대가로 외화획득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이라고 보다는 어떤 친선문화사절단이 대거 출국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의 마음은 그러한 분위기와는 무관하게 그냥 빨리 탑승을 했으면 하는 초조한 기분 속에 젖어 있었다. 누군가가 나의 뒷덜미를 잡고 너는 못가 하고 끌어 낼 것 같은 불안한 심정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나는 1962년 봄 광주간호학교를 졸업한 후 연령 미달로 6 개월을 기다린 후 양호교사로 재직 중 일간지에서 해외개발공사 광고를 보고 파독 간호사.. 더보기 재독한국여성모임과의 첫 만남 (유정숙) 재독한국여성모임과의 첫 만남유정숙 재독 한인 여성회 회원 1985년 4월, 나는 이미 나이 서른이 넘어 독일에 왔다. 그때까지 한국에서 살아온 삶을 다 물리치고 다섯 살 된 딸아이와 독일의 탄광도시인 보쿰에 도착하였다. 남편도 같이 왔다. 처음 일년간 박사과정의 이수에 필요한 어학코스를 할 동안 나에게는 정신적으로나 외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이미 변화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 하나는, 내 주변의 "독일적" 상황이 내가 다 "물리치고" 온 한국 생활을 정신적으로 정리하고, 현재를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데 더 없는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한 여성으로서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아 갈등을 느끼며 왜 이래야만 할까라는.. 더보기 가정 기울며 대학 중퇴하고... (손행자) 가정 기울며 대학 중퇴하고...손행자(재독한국여성모임 회원) 학교 다닐 적에 제일 어려웠던 과목이 국어였다. 그런데 신문에 내 글을 싣는다니 망설여지지만, 공부를 하고 싶어도 경제난 때문에 할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서 나의 경험담을 써서 알리는 것이 도움이 될까하여 용기를 내게 되었다. 나는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는 무난하게 세상물정 모르고 학교공부만 충실해왔다. 그러나 아버님이 4·19 뒤 군수, 경찰서장 등 일괄 처리에 몰려 본인의 잘 잘못과 무관하게 직장을 물러나시게 되었다. 그 후 아버님은 장사 중에 그래도 고상한 것이 서점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아니면 항상 읽고 공부하시는 자신의 성격에 맞아서 택하셨는지 광주 계림동에 서점을 여셨다. 그 때가 내가 조선대 약대에 입학하던 해였다. 어버님.. 더보기 암담했던 '서울의 봄' 뒤로하고 (강여규) 암담했던 '서울의 봄' 뒤로하고강여규(재독한국여성모임 회원) 내가 독일에 온 것은 80년 3월, 박정희가 암살된 후 불확실한 희망이 존재하던, '서울의 봄'이라고 부르던 시기였다. 최루탄 가스와 휴교령이 반복되던 대학시절을 등뒤로 나는 조금은 도망가는 심정으로 유학을 택했다. 박정희 정권의 병영화한 사회에서,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자"는 구호와 함께 물신주의가 팽배해진 사회에서, 그것을 위해 노동자의 인권이 참혹하게 짓밟히고, 모든 비판적 목소리가 빨갱이로 도장 찍히는 숨막히는 사회에서, 장발과 미니스커트의 단속을 피해야 하고, 통행금지 사이렌 소리에 불안해하면서, 남자친구들이 데모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군대에 끌려가 혹독한 매질을 당하고 비굴을 강요당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면서, 가난하고 초라했던 우.. 더보기 독일 적응하자 찾아온 '향수병' (한정로) 독일 적응하자 찾아온 '향수병'한정로(재독한국여성모임 회원) 에 대한 나의 관심은, 한국간호사 추방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으로 시작됐다. 80년도 중반에는 한국 및 아시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생관광의 문제점을 토론하는 세미나 등에 참가했고, 한국의 여성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한 운동이 계기가 되어 90년부터 정식회원이 되어 지금까지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50년 긴 세월의 침묵을 깨고, "정신대" 문제로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는 사실이 독일 매스컴에 퍼졌을 때, 나는 처음으로 이 "정신대" 문제를 알게 되었다. 사태를 이해하자 잔혹했던 일본 정부에 대해 분노가 치솟았다. 그 후 나는 정신대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한국의 정대협과 협력하며 독일 내 여론 형성을 위해 .. 더보기 "내가 왜 독일간호사 식사준비나 하느냐"... (김정숙) "내가 왜 독일간호사 식사준비나 하느냐"...김정숙(재독한국여성모임 회원) '파독 간호사의 눈물'이라는 제목을 접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당시의 눈물로 보낸 세월이었다. 그러나 슬픔의 눈물만은 아니었고 기쁨의 눈물도 없지 않았다. 내가 이곳으로 올 작정을 한 것은 먼저 왔던 친구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보고 난 뒤였다. 이 편지는 나를 황홀의 경지로 몰았다. 이 친구가 사는 집에는 수영장이 있어 근무가 끝나면 언제나 수영을 할 수가 있고, 그토록 갖고 싶었던 스테레오 전축도 2개월 일한 월급으로 구입할 수가 있고, 헤르만 헤세의 추종자들인 히피들과 함께 거리를 누비며, 카라얀의 지휘아래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베토벤을 들을 수 있고, 시내 중간 중간에 있는 공원잔디에 누워서 괴테의 책을 읽고.. 더보기 공동의 경험을 나누며 모든 회포를 풀 수 있는 곳 -박재신- 공동의 경험을 나누며 모든 회포를 풀 수 있는 곳 -박재신- 1970년 5월 6일 내가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는 어둡고 춥고 배고플 때였었다. 그때 시립 우르반 병원에서 꽃다발로 날 환영해 주었고, 운 좋게도 병원의 공사를 마무리되지 않아 3개월 동안 괴테 어학원에서 언어연수만 해도 되었다. 독일에 대한 사전지식은커녕 독어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고 소양교육/반공교육만 받은 우리는 헬레나라는 간호사의 도움으로 무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시립병원은 거의 30%이상이 한국인 간호사로 운영되는 상황이어서 언어소통은 그런 데로 되었다. 그런데 스위스의 비타 생명보험회사는(Vita Versicherung) 우리를 속여 생명보험을 들게 하여 장기동안 머무는 이에게는 해를 끼친 경험이 있다. 모친께서는 내가 파독될 당시.. 더보기 사랑을 나눌 수 있고 발전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광장 -오선녀- 사랑을 나눌 수 있고 발전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광장 -오선녀- 내가 여성모임을 알게 된 것은 약 20년 전 즈음 같다. 공부를 할 때 한두 번 여성모임에 참석 한 적이 있다. 마음이 분주하게 살다보니 관심과는 달리 자주 참석하질 못했다. 난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거의 한국인과 접촉이 없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관심이 여성모임에 생겼고 또 여성과 가정상담을 하는 나로서는 독일인의 그리고 다른 외국인의 문제를 다루면서 한국인들의 생활에도 관심이 생겼다. 내 직장을 통해 내게 오는 사람들은 90년대에는 약 75%가 독일인이었고 외국인들 중에서는 터키인들이 많았고 그 나머지는 동유럽 사람들, 소련, 폴란드, 유고, 필리핀, 타이랜드,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등의 사람들이었다. 2000년에 들어서면..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다음